역사

무종산

yjsunshine 2024. 6. 16. 13:20

2024.06.16

无终山_历史上的无终山_历史地名:无终山_历史地名 (guoxuemi.com)

無終山
①又名翁同山、陰山。在今天津市薊縣北,接玉田縣界。《三國志·魏書·田疇傳》:“疇率宗人避難於無終山。”又《水經·鮑丘水注》:鮑丘水“西南徑無終山,即帛仲理所合神丹處也,又於是山作金五千斤, 以救百姓, 山有陽翁伯玉田,在縣西北。有陽公壇社,即陽公之故居也。《搜神記》曰:‘雍伯,洛陽人。至性篤孝,父母終殁,葬之於無終山。山高八十里,而上無水,雍伯置飲焉。’”

②在今河北玉田縣東北三十里。《水經·鮑丘水注》引《搜神記》曰:“雍伯,洛陽人,至性篤孝。父母終殁,葬之於無終山。”即此。

 

무종산(無終山)
① 또 다른 이름은 옹동산(翁同山), 음산( 山)입니다. 현재 톈진시(天津市) 계현(蓟县) 북쪽, 옥전현(玉田县) 경계에 접해 있습니다. 《삼국지·위서·전주전》( 三國志·魏書·田疇傳 )에 "전주(田)가 종족 사람들을 이끌고 무종산으로 피난했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수경·포구수주》(水经·鲍丘水注)에 따르면, 포구수(鮑丘水)는 "남서쪽으로 무종산을 지나가는데, 바로 백중리(帛仲理)가 신단(神丹)을 합성하던 곳이다. 또 이 산에서 금 5천 근을 만들어 백성을 구했다. 산에는 양옹백(阳翁伯)의 옥전(玉田)이 있고, 현의 서북쪽에 양공단사(阳公坛社)가 있는데, 이는 양공의 옛 거주지이다. 《수신기》(搜神记)에 '옹백(雍伯)은 낙양(洛阳) 사람으로, 지극히 효성이 깊었다. 부모가 돌아가시자 무종산에 장사 지냈다. 산은 높이가 80리였고, 위에는 물이 없었으나, 옹백이 그곳에 물을 마련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② 현재 허베이(河北) 옥전현(玉田县) 북동쪽 30리에 있습니다. 《수경·포구수주》(水经·鲍丘水注)에서 《수신기》(搜神记)를 인용하여 "옹백은 낙양 사람으로 지극히 효성이 깊었다. 부모가 돌아가시자 무종산에 장사 지냈다"고 하였으니, 바로 이곳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