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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고려사 태조 16년 기록

2025.08.15

茂 우거질 무, 무성할 무

 

후당의 조서에서 고려 태조 왕건을 장회(중국 양자강과 회하 사이 지역)의 번성한 가문 출신이라 일컬으며,

왕건의 부인 유씨를 하동군 부인으로 봉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1.한국사데이터베이스의 기록

고려사 < 고려시대 사료 DB

 
(癸巳)十六年 春三月 辛巳 唐遣王瓊·楊昭業來冊王, 詔曰 “王者法天而育兆庶, 體地而安八紘, 允執大中, 式彰無外. 斗極正而衆星咸拱, 溟渤廣而百谷皆宗. 所以居戴履之倫, 窮照臨之境, 弘道修德, 恭己虛懷. 歸心者, 睠爲王人, 嚮化者, 被以風敎. 由是, 擧封崇之命, 稽旌賞之文, 垂於古先, 罔敢失墜. 其有地, 稱平壤, 師擅兼材. 統五族之强宗, 控三韓之奧壤, 務權鎭靜, 志奉聲明, 爰協彛章, 是加寵數. 咨! 爾權知高麗國王事建! 身資雄勇, 智達機鈴, 冠邊城以挺生, 負壯圖而閒出. 山河有授, 基址克豊. 踵朱蒙啓土之禎, 爲彼君長, 履箕子作蕃之跡, 宣乃惠和. 俗厚知書, 故能導之以禮義, 風驍尙武, 故能肅之以威嚴. 提封於是謐寧, 生聚以之完輯. 而復行及唇齒, 分篤皮毛. 忿黠虜之挻祅, 恤隣邦而救患. 矧以披肝效順, 秉節納忠, 慕仁壽以康時, 識文思之撫運. 航深梯險, 輸贐貢琛, 繼陳述職之儀, 茂著勤王之業. 夫推至誠而享豊報, 道之常也, 奠眞封而顯列國, 禮之大也. 勞有所至, 朕無愛焉. 今遣使太僕卿王瓊, 使副大府少卿通事舍人楊昭業等, 持節備禮, 冊命爾爲高麗國王. 於戱! 作善, 天降之祥, 守正, 神祚之福. 干戈, 愼於危事, 文軌, 資於遠謀, 永爲唐臣, 世服王爵. 往踐厥位, 汝惟欽哉.”
 
 
〈계사〉 16년(933) 봄 3월 신사 후당(後唐)에서 왕경(王瓊)과 양소업(楊昭業)을 보내 왕을 책봉하였다. 조서에 이르기를,
“왕이라는 것은 하늘을 본받아 온 백성을 기르고 땅을 본떠 천하[八紘]를 편안하게 하는 존재이니, 성실히 큰 중용(中庸)의 도를 지켜 온 천하에 드러나지 않은 곳이 없다. 북두성은 바르므로 뭇 별이 다 그리로 향하고, 큰 바다는 넓으므로 온 골짜기가 모두 그리로 흘러간다. 그런 까닭에 하늘과 땅 사이의 인간 세상에 살면서 해가 내리비추는 곳을 다 살피며, 도를 넓히고 덕을 닦으며 자신을 공손히 하여 마음을 비워야 한다. 진심으로 귀부(歸附)한 사람은 돌보아 왕의 백성으로 삼고, 향화(嚮化)한 사람에게는 풍교(風敎)를 입혀야 한다. 그러므로 봉작하는 명을 거행하고 표창하는 글을 계고하는 것이니, 이는 예로부터 내려오는 것이며 감히 빠뜨려서는 안 된다. 그대는 차지한 땅을 평양(平壤)이라 일컬었으며 군사를 장악하고 재능도 겸비하였다. 오족(五族)의 강한 우두머리를 통합하고 삼한(三韓)의 비옥한 땅을 지배하여, 〈혼란한 판국을〉 진정시키는 데 힘쓰고 〈상국의〉 성명(聲明)을 받들고자 뜻하였으니 이에 상례[彛章]를 따라 은총의 예를 더한다.

아! 그대 권지고려국왕사(權知高麗國王事) 왕건(王建)은 자질이 웅대하고 용맹하며 지혜는 기략[機鈴]에 통달하였고, 변방에서 으뜸으로 빼어나게 태어났고 장대한 포부를 가지고 드러내었다. 산하(山河)가 내려준 바, 터전이 지극히 풍요하다. 주몽(朱蒙)이 건국한 상서로움을 계승하여 저들의 왕이 되고, 기자(箕子)가 번국(蕃國)을 이룬 자취를 밟아서 은혜와 조화를 펼치고 있다. 풍속이 두텁고 글을 알기에 능히 예의로 이끌 수 있으며, 기풍이 용감하고 무예를 숭상하므로 위엄으로 정중히 할 수 있다. 봉토가 이에 고요하고 편안해졌고 백성은 이로써 온전히 모이게 되었으며, 그리하여 다시 이와 입술같이 긴밀해지고 피부와 터럭같이 돈독해지게 되었다.
교활한 오랑캐가 재앙을 일으키는 데 분노하고, 이웃 나라를 걱정하여 근심에서 구원하였다. 또한 진심으로 순종하며 절의를 붙잡고 충성을 바치면서, 인덕(仁德)으로 백성을 오래 살게 하는 것을 사모하여 시절을 평안히 하고, 경륜과 도덕[文思]을 본받아 운수(運數)를 어루만졌다. 깊은 바다를 건너고 험한 길을 넘어와 예물을 나르고 보배를 바쳤으며, 자기 사업을 보고하는 절차를 이행하여 근왕(勤王)의 업적을 잘 드러내었다. 무릇 지극한 정성을 넓히면 풍성한 보답을 누리는 것이 떳떳한 도리이고, 실제 봉작을 정하여 열국(列國)을 드러내는 것이 큰 예절일 것이다. 공로가 지극하므로 나는 아낄 것이 없다.

이제 정사(正使) 태복경(太僕卿) 왕경(王瓊)과 부사(副使) 대부소경 겸 통사사인(大府少卿 兼 通事舍人) 양소업(楊昭業) 등을 보내 부절(符節)을 가지고 예를 갖추어 그대를 고려국왕으로 책봉하는 명을 내린다.
아! 선한 일을 하면 하늘이 상서로움을 내리고, 바른 도리를 지키면 신(神)이 복을 주는 법이다. 무기는 위태로울 때 신중히 사용하고 통일된 제도[文軌]는 원대한 계책의 바탕이 되니, 길이 후당(後唐)의 신하가 되어 대대로 왕의 작위를 누리라. 이제 그 지위를 내리니 그대는 공경히 받으라.”
라고 하였다.

 

 

2.중국 위키백과 고려사 기록

 

癸巳)十六年春三月辛巳,唐遣王瓊、楊昭業來冊王,詔曰「王者法天而育兆庶,體地而安八紘,允執大中,式彰無外。斗極正而衆星咸拱,溟渤廣而百穀皆宗。所以居戴履之倫,窮照臨之境,弘道修德,恭己虛懷。歸心者,睠爲王人,嚮化者,被以風敎。

 

계사년(癸巳) 태조 16년(933년) 봄 3월 신사일,
당나라에서 왕경(王瓊)과 양소업(楊昭業)을 보내 왕에게 책봉을 내렸다.

조서에 이르기를,
“왕이란 하늘의 법도를 본받아 백성을 기르고, 땅의 덕을 체현하여 온 세상을 평안케 하며, 참으로 큰 도를 굳게 지켜 안팎을 차별하지 않는다. 북두성의 자리가 바로 서면 모든 별이 함께 공경하고, 명발과 발해가 넓으면 온갖 곡식이 모두 그 근본을 따른다. 그러므로 하늘과 땅이 부여한 지위를 지키고, 그 경계를 두루 살피며, 도를 넓히고 덕을 닦으며, 몸가짐을 공손히 하고 마음을 비운다. 그 마음을 바치는 자는 왕의 백성이 되고, 교화를 우러르는 자는 그 풍속의 가르침을 입는다.

 

由是,擧封崇之命,稽旌賞之文,垂於古先,罔敢失墜。其有地,稱平壤,師擅兼材。統五族之強宗,控三韓之奧壤,務權鎭靜,志奉聲明,爰恊彛章,是加寵數。咨!爾權知高麗國王事建,身資雄勇,智達機鈴,冠邊城以挺生,負壯圖而閒出。山河有授,基址克豊。踵朱蒙啓土之禎,爲彼君長,履箕子作蕃之跡,宣乃惠和。俗厚知書,故能導之以禮義,風驍尙武,故能肅之以威嚴。

 

이 때문에 높은 작위를 내리고 상을 주는 글을 살펴 옛 성왕의 법도를 이어오니, 감히 잃거나 떨어뜨리지 않는다. 평양이라 불리는 땅은 군사와 재능을 함께 갖추어 다섯 종족의 강한 무리를 거느리고, 삼한의 깊은 옛 땅을 다스리며, 권도를 잡아 나라를 안정시키고, 뜻은 소리를 높여 명성을 받드는 데 있으며, 예의의 법을 함께 하여 은혜와 총애를 더하였다.

 

아! 너, 권지 고려국왕 왕건은 몸에 웅대한 용기를 갖추고, 지혜가 기민하여 나라의 변방에 뛰어나게 나서고, 큰 뜻을 품고 시기를 타서 출현하였다. 산천이 너에게 주어지고, 나라의 기틀이 넉넉히 갖추어졌다. 주몽이 땅을 연 길한 징조를 이어 이 나라의 임금이 되었고, 기자가 봉국을 세운 자취를 밟아 은혜롭고 화목하게 다스렸다. 풍속이 두터워 글을 아는 까닭에 예와 의로 이끌었고, 기상이 날카롭고 무용을 숭상하니 위엄으로 다스릴 수 있었다.

 

提封於是謐寧,生聚以之完輯。而復行及唇齒,分篤皮毛。忿黠虜之挻祅,恤隣邦而救患。矧以披肝效順,秉節納忠,慕仁壽以康時,識文思之撫運。航深梯險,輸贐貢琛,繼陳述職之儀,茂著勤王之業。夫推至誠而享豊報,道之常也,奠眞封而顯列國,禮之大也。勞有所至,朕無愛焉。

 

그리하여 영토가 평온하고 백성이 잘 모여 편안해졌다. 또 입술과 이처럼 서로 의지하고, 가죽과 털처럼 서로 친밀하였으며, 교활한 오랑캐가 재앙을 일으키자 이웃 나라를 구제하였다. 더구나 간과 쓸개를 열어 성심을 드러내고, 절개를 지켜 충성을 바쳤으며, 인과 수(仁壽)를 사모하여 세상을 편안케 하고, 글과 생각을 살펴 나라를 다스렸다. 깊은 바다를 건너고 험한 산을 넘어 예물을 바치고 보배를 바쳤으며, 직무를 진술하는 예를 이어가고, 왕을 섬기는 공을 드러냈다.

 

지극한 정성을 다하여 풍성한 보답을 받는 것은 도리의 상례이며, 참된 봉토를 주어 제후국을 높이는 것은 예의 큰 법도이다. 공이 이른 곳에는 내가 아낌이 없을 것이다.

 

今遣使太僕卿王瓊,使副大府少卿兼通事舍人楊昭業等,持節備禮,冊命爾爲高麗國王。於戱!作善,天降之祥,守正,神祚之福。干戈,愼於危事,文軌,資於遠謀,永爲唐臣,世服王爵。往踐厥位,汝惟欽哉。」

 

이제 태복경 왕경과 대부소경 겸 통사사인 양소업 등을 보내어 절을 주고 예를 갖추어 너를 고려국왕으로 책봉한다.

오호라! 착한 일을 하면 하늘이 길한 상서를 내리고, 바른 길을 지키면 신이 복을 준다. 무기를 쓰는 일은 위험한 때를 삼가고, 문치(文治)는 먼 계획에서 도움을 얻어, 영원히 당나라의 신하가 되어 대대로 왕의 작위를 누리라. 가서 그 자리에 나아가라. 너는 마땅히 삼가하라.”

 

又詔曰:「卿珠樹分煇,金鉤協兆,領日邊之分野,冠海外之英雄。士心,同感於撫循,民意咸歌於惠養。而又誠堅事大,志在恤隣,抹馬利兵,挫甄萱之黨,分衣減食,濟忽汗之人。繼航海以拜章,每充庭而致貢。

 

또 조서에 이르기를,
“경은 구슬나무가 빛을 나누듯 찬란하고, 금갈고리가 길한 징조를 맞춘 듯하다. 해 뜨는 변방의 땅을 거느리고, 해외의 영웅 위에 군림하였도다. 사졸들은 어루만짐에 감응하고, 백성은 은택에 노래하였다. 또 정성을 굳게 하여 대국을 섬기고, 뜻을 이웃을 구휼하는 데 두었으며, 말을 먹이고 군비를 갖추어 견훤의 무리를 꺾었고, 옷을 나누고 식량을 덜어 흘한(忽汗)의 백성을 구제하였다. 바다를 건너와 조서를 받들고, 매번 조정에 나아가 공물을 바쳤다.

 

金石之誠明貫日,風雲之梗槩凌空,名播一時,美流四裔。忠規若此,賞典寧忘?特議䟽封,仍升峻秩。剪桐圭而錫命,目極蓬山,睠桃野以傾思,心隨濟水。勉祗異禮,永保崇勛。今授卿特進檢校太保使持節玄菟州都督上柱國充大義軍使,仍封高麗國王。

 

금석 같은 정성과 밝음이 해를 꿰뚫고, 바람과 구름 같은 기개가 하늘에 솟았으며, 명성이 한때에 떨치고 그 아름다움이 사방에 퍼졌다.

 

충성과 규범이 이와 같으니, 어찌 상을 잊겠는가. 특별히 논의하여 봉토를 더하고, 높은 관직으로 올린다. 오동나무로 만든 홀을 깎아 명을 내리니, 눈은 봉래산 끝까지 미치고, 복숭아 동산을 돌아보듯 마음을 기울이며, 생각은 제수를 따라 흐르듯 한다. 부디 특별한 예를 삼가 받들어 영원히 높은 공훈을 지켜라.

 

이제 경에게 ‘특진 검교 태보 사지절 현도주도독 상주국 대의군사’를 제수하고, 아울러 고려국왕에 봉한다.

 

今差使太僕卿王瓊,使副大府少卿楊昭業等往彼,備禮冊命,兼賜國信銀器匹叚等,具如別錄,至當領也。」

 

이제 태복경 왕경과 부사 대부소경 양소업 등을 보내어 예를 갖추어 책명하고, 아울러 국신으로 은그릇과 비단 등을 하사하니, 목록은 별록에 적었으니 도착하면 받으라.”

 

又詔曰「卿,長淮茂族,漲海雄蕃,以文武之才,控玆土宇,以忠孝之節,來稟化風。貞規旣篆於旗常,寵數是覃於簡冊。如綸如綍,已成虎穴之榮,宜室宜家,足顯鵲巢之美。俾頒湯沐,以慶絲蘿,永光輔佐之功,式協優隆之命。諒卿誠素,知我渥恩。卿妻柳氏,今封河東郡夫人。」

 

또 조서에 이르기를,
경은 장회(長淮)의 번성한 가문에서 나고, 넓은 바다와 같은 웅장한 번국으로서, 문무의 재능으로 이 땅을 다스리고, 충성과 효의 절개로 교화를 받아들였다. 굳은 규범이 깃발과 기치에 새겨졌고, 은혜와 총애가 문서와 책에 널리 미쳤다. 비단과 끈 같은 은혜로 호랑이 굴 같은 영광을 이루었고, 집안이 화목하여 까치집 같은 아름다움을 드러냈다. 마땅히 탕목(湯沐, 봉록)을 내려 실로와 덩굴처럼 기쁨을 더하며, 영원히 보좌한 공을 빛내고, 크고 융숭한 명을 이룰 것이다. 경의 참되고 순수한 성심을 믿고, 나의 두터운 은혜를 알리라. 경의 아내 유씨를 하동군부인으로 봉한다.

 

又賜三軍將吏等詔曰「朕以王建,星雲稟秀,金石輸誠,信義着於睦隣,忠孝彰於事大。領三韓之樂土,每奉周正,越萬里之洪波,常陳禹貢。勳名已顯,爵秩未崇,宜寵錫以桐圭,俾眞封於桃野。今封授高麗國王,差使往彼,備禮冊命,便令慰諭,想宜知悉。」又賜曆日,自是,除天授年號,行後唐年號。

 

 

또 삼군 장수와 장교들에게 조서하여 말하였다.
“짐이 왕건을 보니, 성운이 아름다움을 받고, 금석 같이 정성을 다하며, 신의와 의리가 이웃과의 화목에 드러나고, 충성과 효가 대국을 섬기는 데 빛나도다. 삼한의 즐거운 땅을 거느리면서 항상 주나라의 올바른 법을 받들고, 만 리의 큰 물결을 넘어 언제나 하공(禹貢)의 예를 바쳤다. 공과 이름은 이미 드러났으나 작위와 지위가 높아지지 않았으니, 마땅히 오동나무 홀을 하사하여 봉토를 복숭아 동산에 두고자 한다. 이제 고려국왕에 봉하고, 사신을 보내 예를 갖추어 책봉하며 위로하니, 응당 알도록 하라.”

 

또 달력을 하사하며, 이로부터는 ‘천수(天授)’ 연호를 버리고 후당의 연호를 사용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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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2.

홍건적은 어떻게 고려까지 왔을까 - YouTube

 

아래 지도 혼일제도지도를 보면 우리가 알던 하서,하동,하내,서경등의 위치가

황하 서쪽에 형성돼 있음을 볼 수있다.

 

또 홍건적이 일어난 곳은 송나라인데 중국 남부임을 알 수있다.

그러니까 고려의 동남부에서 남송을 마주 본다는 말이 사실임을 알 수있다.

 

홍건적은 어떻게 고려까지 왔을까

 

7분경:

 

 

2분30초경:

고려군은 회안로(淮安路: 강소성 회안시)로 이동하여 여러 차례 전투를 벌였다.
최영 장군의 고려군은 장사성 군사와 치열하게 싸워 27전 27승을 거두었다.

 

중국 남부 강소성 남부와 절강성 일대를 차지한 홍건적 장사성이

고려에 패한후 조공을 받친다.

 

 

遭者中夏多事區區 不忍生民塗炭

遂用奮起淮東 幸保全吳之地

然西寇肆兇殘虐百姓

雖志存掃蕩 而未知攸濟耳

稔聞國王有道 撫封之內 民樂其生 殊感懷想

 

高麗史 世家 卷39 恭愍王 7年

 

요즈음 중하(中夏)에 일이 잦아 백성들이 도탄에 빠진 것을 차마 보고만 있을 수 없었습니다.

 

이에 회동(淮東)에서 분기하여 마침내 오(吳)의 땅을 보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서쪽의 도적들이 흉포하게 날뛰며 백성들을 잔혹하게 해치고 있으니,
비록 그들을 쓸어버리고자 하는 뜻은 있으나 언제 이를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

 

듣건대 국왕께서는 도(道)를 지니신 분이라 봉역 안의 백성들이 생업을 즐기며 살아간다 하니,
이에 깊이 감동하고 그리워하는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고려사 세가 권39 공민왕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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