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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풀이

巢、許、箕、潁逺在河南,而誤指行唐(2026.07.28)

2026.07.28

 

행당(行唐)에 관하여 잘못된 지역 비정이라는 설명.

 

巢、許、箕、潁逺在河南,而誤指行唐

소부(巢父)와 허유(許由), 기산(箕山)과 영수(潁水)는 멀리 하남에 있는데,

잘못하여 행당(하북 석가장시 행당현)에 있다고 지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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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행당(行唐)은 오늘날 중국 허베이성(河北省) 스자좡시(石家莊市) 행당현(行唐縣)입니다.

태항산 동쪽 기슭과 화북평원이 만나는 곳에 있으며, 스자좡 시가지의 북쪽에 있습니다. 현재 현청 소재지는 용주진(龍州鎭)입니다. 행당현 위치와 개요

 

문장은 다음과 같은 뜻입니다.

 

巢、許、箕、潁逺在河南,而誤指行唐

소부(巢父)와 허유(許由), 기산(箕山)과 영수(潁水)는 멀리 하남에 있는데, 잘못하여 행당에 있다고

지목하였다.

 

당시 행당현의 지방 전승에서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습니다.

  • 행당현 서북쪽 약 50리에 기산(箕山)이 있다.
  • 허유가 이곳에 은거했다.
  • 산 위에 허유묘·기표암(棄瓢巖)·세이계(洗耳溪)·소부문답비(巢父問答碑)가 있다.
  • 행당현의 하천을 허유가 귀를 씻었다는 영수(潁水)라고 불렀다.
  • 소부가 소에게 물을 먹인 곳이라는 우음산(牛飲山)도 있었다.

이러한 전승은 실제로 옛 《행당현지》와 《진정부지》 등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금도서집성》의 행당현 기산 기록

 

그러나 《기보통지》 권53의 편찬자는 이를 믿지 않았습니다.

 

소부·허유의 전설과 관련된 본래의 기산과 영수는 하남성 숭산 일대에 있는데,

행당 사람들이 자기 고장의 비슷한 산과 하천에 그 전설을 갖다 붙였다고 비판한 것입니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행당은 보정시의 당현(唐縣)이 아니라, 분명히 스자좡시의 행당현(行唐縣)입니다.

이 문장은 바로 《기보통지》 편찬자가 지적한 지방 전승에 의한 고적의 잘못된 비정 사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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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보통지(畿輔通志)》는 청나라 때 수도 주변 지역인 직례성(直隸省)의 역사·지리·행정·인물·유적 등을 종합적으로 기록한 관찬 지방지입니다. 오늘날 기준으로는 대체로 베이징시·톈진시·허베이성 일대를 다루지만, 당시 행정구역은 현재와 다르므로 현대 지명과 단순히 일치시키면 안 됩니다.

‘기보(畿輔)’는 다음과 같은 뜻입니다.

  • 기(畿): 황제가 거주하는 수도와 그 주변 지역
  • 보(輔): 수도를 둘러싸고 보좌·방어하는 지역
  • 통지(通志): 한 지역의 여러 분야를 종합하여 기록한 지방지

따라서 《기보통지》는 문자 그대로 “수도 주변 지역의 종합 지리지”라는 뜻입니다.

청대에는 크게 세 차례 편찬되었습니다.

판본편찬 시기규모주요 편찬자

강희본 1680~1682년 46권 우성룡(于成龍)·격이협덕(格爾古德) 감수, 곽분(郭棻) 총찬
옹정본 1729~1735년 120권 당집옥(唐執玉)·유우의(劉于義)·이위(李衛) 감수, 전역(田易)·진의(陳儀) 등 편찬
광서본 1871년 착수, 1884년 완성, 1886년 간행 본문 300권·권수 1권 이홍장(李鴻章) 감수, 황팽년(黃彭年) 총찬

옹정본 《기보통지》

지금 번역하신 글은 옹정 13년(1735)에 간행된 120권본 가운데 권53 〈고적(古蹟)〉의 서문입니다. 위키문헌 원문

이 판본은 31개 부문으로 나누어 다음과 같은 내용을 기록합니다.

  • 행정구역과 연혁
  • 산천·하천·수리 시설
  • 성곽·관문·도로
  • 호구·토지·조세
  • 학교·과거·관직
  • 사당·사찰·능묘
  • 인물·열녀·문학
  • 옛 성터·전쟁터·고분·고적

특히 권53의 서문에서는 기존 지방지의 문제점을 지적합니다. 지방 사람들이 문헌에 등장하는 사건이나 인물을 자기 고장과 억지로 연결하여 가짜 유적을 만들어냈고, 후대 지방지가 이를 그대로 베껴 오류가 누적되었다는 것입니다. 편찬자들은 이런 잘못을 바로잡고 당·송 이후 문인들의 기록을 보충하려 했지만, 확실하지 않은 기록도 훗날의 고증을 위해 일부 남겨두었다고 밝혔습니다.

광서본 《기보통지》

현재 역사·지리 연구에서 더 많이 이용되는 것은 광서본 300권입니다. 동치 10년(1871)에 편찬을 시작했기 때문에 일부 서지에서는 ‘동치 《기보통지》’라고도 하지만, 광서 연간에 완성·간행되었으므로 일반적으로 **광서 《기보통지》**라고 부릅니다.

광서본은 이전 판본보다 자료가 훨씬 풍부하고, 내용을 다음과 같은 형식으로 체계화했습니다.

  • 기(紀)
  • 표(表)
  • 약(略)
  • 록(錄)
  • 전(傳)
  • 지여(識餘)
  • 서전(敍傳)

옛 지명, 하천의 흐름, 고성의 위치, 역대 행정구역의 변천을 연구할 때 매우 중요한 자료입니다.

다만 《기보통지》는 청나라 관찬 지방지이므로, 모든 내용이 정확한 것은 아닙니다. 편찬자들도 권53에서 인정했듯이 오래된 지명과 유적에는 후대의 전승이나 억지 비정이 섞여 있습니다. 따라서 고대 지리를 연구할 때는 《한서·지리지》, 《후한서·군국지》, 《수경주》, 《태평환우기》, 고지도 및 고고학 자료와 대조해야 합니다.

옹정본 120권은 중국철학서전자화계획에서 원문을 권별로 열람할 수 있으며, 사고전서 영인본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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